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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터교회 역시 의미 있는 교회이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 쓴
"너희는 이 시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mind: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
"하나님 나라는 교회 건물의 사방 벽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며 전통적인 교회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교회의 사명은 말씀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으로
이는 전통적인 교회를 넘어서 일터에서 크리스천들이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갈 때 이뤄질 수 있다"
"교회는 거룩하고 일터는 악하다는 헬라 철학에 기초한 이분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 등의 일터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들어왔으나
정작 직장 속에서는 크리스천의 가치관과는 상관없는 생활 등 하며 영적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일터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늘어날 때, 이 사회가 변혁될 수 있다"
"성경에 예수님은 물론 바울과 베드로 등 성경 속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일터 속에서 사역하였다"
"21세기 한국교회 대안의 하나인 일터교회에 대해 목회자와 성도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수 많은 일터 사역자들이 세워져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일터의 변혁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역자들이다."
"일터 크리스천들이 직장에서 예수님과 같은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크리스천들에게 주일의 교회보다 더 중요한 교회는 주중의 일터에서 이뤄지는 교회이다"
"크리스천의 변화는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인 일터에서 일어나야 한다"
"일터교회 역시 의미 있는 교회이며 그 속에서 직업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크리스천들도 교회내 사역자들과 동일한 "풀타임 사역자"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일터교회의 확산을 위해서는
성도들의 패러다임 전환, 교회론의 재정립, 체계적인 일터사역자의 양성의 교육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일터교회는 직장인들의 주5일 근무하는 일터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하여 말한다"
"일터교회는 부와 지역교회들의 이해가 필요하며 나아가 이들은 사회변혁을 이루어 갈 수 있다"

* "교회는 두 형태를 취해야 한다"
핵 교회(지역교회, nuclear church)모이는 교회 : 주일 지역교회에 모이는 회중 모임으로서의 교회
확대교회(일터교회, extended church)흩어지는 교회 : 일터에 흩어진 성도들의 몸으로서의 교회
"일터교회란 세상 일터에서 하는 일들이 확실한 기독교 사역이다"
일터교회는 다스림(사회변혁)에는 복음전도명령과 문화명령이 있다.
ex) 과테말라의 알모롱가 :
그리스도인들이 일자리에서 올바른 영향력을 흘려 보낼 때 도시의 유익한 변화가 일어난다.
실례로 영적각성, 사회적평화, 물직적 축복, 법과질서, 육체적 생태학적 변화
"일터교회는 빈곤에서 풍요로 거룩하든, 거룩하지 않든 물질이 필요하다" 즉, 사역을 하기 위해
물질은 당연한 것이고, 사업하는 성도들의 사업에 대한 성경원리를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일터교회는 가난에서 풍요로 가는 방법 하나님께 순종,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라,
힘껏 드려라, 자신을 낮추라,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라, 진짜 목표를 바라보자"

* 일터가 교회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출근하는 일터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다.
대립과 갈등, 배신과 미움, 실업과 양극화 문제로 시달리는 곳이다.
일터 속의 사람들은 매일 환율과 금리, 주가, 부동산,부채에 매달려 살고 있다.
방송과 신문에서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현란하게
'사라!''사라!'를 연발하며 사람들의 건전한 소비판단을 마비시키고 있다.
주택대출, 자녀 사교육, 과소비가 이 시대 세상성의 대표코드이다.
이처럼 일터는 돈 숭배로서 매모니즘이 지배하는 성공과 탐욕의 장이다.
나아가 감각과 쾌락 지향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활개치는 장이다. 영적으로는 사단이 꽉 잡고 있는 영역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이 교회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과거 산업자본주의 하에서는 근면과 성실이 크리스천의 직업윤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근로소득보다는 금융소득, 자산소득이 대세를 이룬다.
돈 벌기 현장은 매일 엄청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각종 경제변수 급등락은 대박과 반쪽 쪽박을 빈번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Lehman Brothers International)
전 세계를 구렁텅이에 빠트린 전세계적 금융위기 사태였다.
그리고 2019년 전세계 팬데믹 코로나19로 금융자본주의 하에서는 정보 선점이 바로 돈 버는 핵심이다.
남들이 하지 않을 때 남보다 한발 먼저 하고 남들 보다 먼저 빠져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진짜 중요한 정보는 사람들간에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극심한 이기주의자가 횡행하게 된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은 그야말로 찾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야 말로 경제활동이 돈 놓고 돈 먹는 식의 카지노 자본주의가 되고 말았다.
이는 타락한 인간 본성에 연유한 것으로 시장 만능의 버블경제가 만들어낸 소산이다.

신 자유주의 이념이 만들어 낸 인간상은 시장 만능주의 하에서 성공과 경쟁에 능한 인간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것 챙기기에 탁월한 이기적 인간상이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배우기 보다
자기점수 잘 받기 위해 친구를 경쟁자로 인식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오늘 일터는 극심한 갈등에 놓여 있다.
서로가 자기 것 챙기기에 혈안이다. 주위 사람이 모두 경쟁자이고 적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 일터는 분열과 대립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
노사, 이념, 세대, 남.여, 지역,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권으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다.
이런 곳에서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 하나님은 일터를 회복시키길 원하신다.
우리의 일터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시길 원하신다.
오늘도 수많은 직장에서 직장인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이처럼 일터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직장의 한 공간으로서 사무실이나 회의실에서도 찬양과 기도가 드려질 수 있다.
하나님은 그곳이 생명과 사랑의 장이 되길 원하신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사람과의 만남에 성령의 역사하시길 원하신다.
그리고 기업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상품과 서비스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원하신다.
나아가 중소기업에서의 생산과 영업, 마케팅과 회계관리에 하나님 성품이 나타나시길 원하신다.
일터에서 공동체의 정신이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이처럼 일터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언제 이곳에 거룩함이 생겨난단 말인가?
일터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생명과 사랑이 충만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나눔과 돌봄, 섬김으로서 공동체 정신이 나타날 때 가능하다.
형제들이 서로 협력하며 자기를 낮추어 하나 될 때 가능하다.
그럴 때 일터는 거룩해 질 수 있다.
사탄이 그렇게 놓지 않으려 하는 일터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일터에서 성경공부 모임이 만들어지고,
이 모임이 확대 성장하여 주일예배를 드리는 단계로 나아간다면 일터교회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다만, 주일에 별도의 예배를 드리는 형태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러한 모임을 일터교회라고 호칭하기 보다는 일터 모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주일 예배를 일터에서 갖지 않는다면
일터모임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을 지역교회로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일터모임에서 활동하는 사역자도 지역교회와 연계하여 지역교회 내
일정한 사역으로 섬긴다든지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 일터교회가 한국의 지역교회가 겪고 있는 한계와 과제,
부의 이동과 사회변혁에 기여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까? 이에 대한 답변은 미지수라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교회목사들은 일터교회의 필요성과 지역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지역교회 중심으로 계속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일터교회는 아직은 씨앗내지 여린 새싹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도 지역교회에서 신앙의 충전을 받고 활기와 용기를 얻어 일터로 출발한다.
그들은 한 주간 세상 속에서 지치고 낙심하여 살아가다가 지역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서 시원한 샘물을 찾는다.
그리고 예배 속의 찬양과 기도가 세상 속에서 묻은 때를 정결하게 씻어주는 분수와 같은 것이 되기를 원한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아직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에게 신앙생활의 장은 지역교회이고 일터교회가 이를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역교회로서는 더 이상 매력이 없어 사람들로
하여금 떠나가지 않도록 계속적인 자기갱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터교회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일터교회를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다양한 일터교회의 사목으로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양성시키는 일을 누군가는 하여야 할 것이다.

* 오늘날 많은 이들이 듣고 있는 성령의 음성이 무엇인가? 바로 사회변혁이다.
성도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경영인은 사업장에, 정치인은 지역사회를 향한,
목회자는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회변혁은 일터교회와 부의 이동이라는 기둥은 성경적인 교회 지도체제에서 솟아나며
부의 이동은 가난의 영을 파괴함으로 솟아난다.
그리고 일터교회와 부의이동을 역동적으로 계속 연결시키는 것이 일터사도의 몫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마음의 생각을 새롭게 할 때 이루어진다.
올바르게 사고할 때 제대로 변화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예수를 구주로 인정하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존재한다.
그곳에서 예수의 왕 되심과 주되심을 알게 되고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리게 된다.
예수께서 말하신 그대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른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갖게 되려면 기독교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기에 우리를 통해서만 확장될 수 있다.
이는 물론 혼자의 힘만으로는 해낼 순 없고 각 부위가 조화를 이룰 때
최고의 컨디션을 갖게 되듯 서로의 협력이 필요하다.

*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지 않는가?
지역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협력을 이루므로 이루어진다.
'교회'로 번역된 성경용어는 에클레시아(ekkesia 또는 esslesia)라는 말이다.
헬라어인 "ekkesia' 어원적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서는 교회에 모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올리버(David Oliver)와 제임스 스웨이트(Janes Thwaites)는
그의 저서는 [일하는 교회(cherch that Works)]에서
새로이 취해야 할 교회의 다른 모습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모임의 성격만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에베소서에서는 에클레시아를 모임과 연결시켜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다.
분명히 성도들이 한 가족처럼 모이는 것이 교회의 모임이지만,
모임 이여야만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도들이 교회 자체이며 성도들이 모이면 교회가 되는 것이다.(D. Oliver. & j. Thwaites,
[일하는 교회(cherch that Works)재인용]"라고 하듯이 교회는
지역교회에 모이는 회중모임으로서의 교회와 주중 엿새 동안 일터에 흩어진 성도들의 몸으로서의 교회이다.
이를 핵 교회와 확대교회라고 명칭 한다면 일터교회는 "확대교회"라 부를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주중 삶의 현장 일터 위에 교회가 있으며 또한 직장에서 하는 일들도
주일교회에서 하는 사역이나 봉사처럼 귀한 사역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며, 예배인 것이다.